배상 6,300억이면 끝날 일에 삼성전자가 1조 2,800억을 낸 이유

참한부자

삼성전자 넷리스트 합의를 설명하는 특집 이미지
삼성전자 넷리스트 합의를 설명하는 특집 이미지

삼성전자가 미국 메모리 회사 넷리스트에 최대 8억 9,700만 달러, 약 1조 2,800억 원을 내기로 했습니다. 6년을 끌어온 특허 분쟁을 끝내는 조건입니다.

숫자만 보면 앞뒤가 안 맞습니다. 삼성전자가 법정에서 물어내라는 판단을 받은 금액은 그 절반입니다.

이미 나온 배상 평결은 약 6,300억 원이었습니다

넷리스트는 텍사스 동부연방법원에서 두 번 이겼습니다.

시점배상 평결액
2023년 4월3억 300만 달러 (약 4,500억 원)
2024년 11월1억 1,800만 달러 (약 1,800억 원)

합쳐서 약 6,300억 원입니다. 삼성전자는 특허 자체가 무효라며 다퉜지만 연방항소법원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멈췄다면 이 사건은 돈으로 끝나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그 두 배를 자진해서 내기로 했습니다.

돈이 아니라 파는 길이 걸려 있었습니다

배상 평결과 성격이 다른 절차가 하나 더 진행 중이었습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특허침해 조사입니다.

넷리스트는 2025년 9월 삼성전자를 ITC에 제소했고, 조사는 2025년 12월 시작됐습니다. 1차 결론 예정일은 2027년 5월이었습니다. 조사 대상 특허 6건 가운데 4건은 유효하다는 판단이 이미 나온 상태였습니다.

ITC가 다루는 건 배상금이 아니라 수입금지입니다. 침해가 인정되면 해당 제품을 미국에 들여올 수 없게 막습니다.

쟁점이 된 기술은 서버용 메모리 모듈(DIMM)과 HBM입니다. HBM을 대량으로 사가는 고객은 대부분 미국에 있습니다. 수입이 막히면 배상금을 얼마 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파는 길 자체가 닫힙니다.

1조 2,800억 원은 그 위험을 2027년까지 안고 가지 않기 위해 낸 값입니다.

계약 구조가 싸울 이유를 줄여 놨습니다

합의 내용을 뜯어보면 단순히 돈을 주고 끝낸 게 아닙니다. 세 가지가 얽혀 있습니다.

첫째, 로열티가 매출에 연동됩니다. 선급금 2억 3,900만 달러(약 3,400억 원)를 먼저 내고, 2026년 3분기부터 2031년 2분기까지 5년 동안 분기당 최대 3,290만 달러(약 470억 원)를 추가로 냅니다. 매출에 연동되는 방식이라 삼성전자 메모리가 잘 팔릴수록 넷리스트가 더 받습니다.

둘째, 삼성전자가 넷리스트에 D램과 낸드를 공급합니다. 넷리스트는 메모리를 사다가 모듈 제품으로 만드는 회사입니다. 상대가 고객이 됐습니다.

셋째, 삼성전자가 넷리스트 보통주 1,000만 주를 매입합니다. 금액은 100만 달러, 약 14억 원입니다.

로열티를 받는 쪽이 상대 매출을 응원하게 되고, 소송을 걸던 쪽이 물건을 사가는 고객이 되고, 지분까지 얽힙니다. 5년짜리 계약 기간 동안 서로 손해 볼 이유를 줄여 놓은 구조입니다.

그런데 발표 당일 주가는 이걸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넷리스트 주가는 발표 당일 58.32% 뛰었습니다. 시가총액이 작은 회사에 5년치 로열티가 확정됐으니 당연한 반응입니다.

삼성전자는 어땠을까요. 국내 시장이 이 소식을 받은 8월 6일, 삼성전자는 6.30% 내렸습니다. 다만 이 숫자를 합의에 대한 평가로 읽으면 안 됩니다. 같은 날의 시장은 이랬습니다.

종목·지수8월 6일 등락률
코스피-4.58%
SK하이닉스 (거래대금 1위)-10.37%
삼성전자 (거래대금 2위)-6.30%
삼성전기-9.37%

반도체 전체가 무너진 날입니다. 소송 리스크 하나가 사라진 사건은 이 낙폭에 묻혔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 합의는 아직 삼성전자 주가에 따로 반영된 적이 없습니다. 좋은 소식이었는지 아닌지가 아니라, 시장이 그것만 떼어놓고 값을 매길 기회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확인할 것은 하나입니다

양측이 모든 소송과 항소를 취하하기로 한 만큼 ITC 조사도 종결 수순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ITC는 당사자 합의와 별개로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기관입니다.

그래서 볼 것은 ITC 조사가 실제로 종결되는지입니다. 그게 확인돼야 삼성전자가 1조 2,800억 원으로 산 것이 무엇이었는지가 완성됩니다. 종결이 확인되지 않으면 돈은 나갔는데 위험은 남아 있는 상태가 됩니다.

참고 자료

8월 6일 국내 등락률은 자체 수집한 장마감 리포트 기준입니다.

이 글은 공개된 보도와 공시 자료를 바탕으로 한 분석이며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